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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鏞錫

趙鏞錫

1896. 4. 26 ~ 1950.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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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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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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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서울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896년 4월 26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북면(北面) 사촌리(舍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경신학교(儆新學校) 학생으로 3월 5일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 참여 당시 서울 연지동(蓮池洞)에서 거주하였다.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東京)의 한인 유학생들이 주도한 2·8독립선언서 발표 소식이 서울에 전해졌다. 신문기사 등을 통해서 제1차 세계대전 종료에 따른 파리강화회의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소식을 들었던 서울의 전문학교 학생들은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심하였다. 학생대표로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의 김형기(金炯璣)·한위건(韓律健), 보성법률상업전문학교(普成法律商業專門學校) 졸업생 주익(朱翼),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의 김원벽(金元璧),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이용설(李容卨)·김문진(金文珍)·김대우(金大羽) 등이 독립선언서 작성과 만세시위를 기획하였다. 2월 20일 서울 숭동(崇洞) 예배당에서 학생 대표들은 제1회 학생지도자 회의를 개최하였다. 2월 23일경 학생 대표 김원벽은 민족대표 구성원이었던 박희도(朴熙道)에게서 3월 1일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시위를 일으킬 계획을 전달받았다. 2월 25일 정동(貞洞) 예배당 구내 이필주(季弼柱) 목사 집에 모인 학생대표는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학생대표들은 지연·학연 등을 이용해서 전문학교와 중등학교 재학생들에게 3월 1일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그런데 2월 28일 밤 조선총독부는 서울 일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견하였다. 2·8 독립선언서 발표 이후 학생들과 민족지도자들을 예의주시하였던 조선총독부는 3월 1일 오전 10시 전후 일제 군경을 앞세워서 대대적인 수색을 전개하였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민족대표 33인은 인사동(仁寺洞) 명월관(明月館)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학생대표들은 3월 1일 오후 2시 30분경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학생들과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서울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후 학생대표들은 3월 5일 서울에서 제2차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오세창(吳世昌)·박주풍(朴疇豊) 등에게서 제2차 만세시위 계획을 듣고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5일 남대문역(南大門驛) 일대에서 학생단 대표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5,000여 명이 넘는 시위대의 일원으로 남대문에서 일제 군경과 충돌이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강기덕과 김원벽이 붙잡혔다. 이후에도 학생들과 함께 대한문(大漢門) 앞과 남대문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3월 5일 서울에서 학생단 주도의 제2차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군경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같은 해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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