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成煥
曺成煥1879. 6. 1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홍원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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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79년 6월 19일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운포면(雲浦面) 안풍리(安豊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조열환(曺烈煥)이다.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6일 홍원군 주익면(州翼面, 현 홍원읍)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홍원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2월 28일 저녁 천도교 중앙총부의 『천도교회월보(天道敎會月報)』 과장인 이종일(李鍾一)이 안상덕(安商悳)에게 강원도와 함경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하라고 지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안상덕은 3월 1일 선언서를 홍원교구의 강인택(姜仁澤)에게 전하고, 그중 일부를 함경북도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강인택으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들은 홍원교구장 강남섭(姜南燮)은 3월 7일 강인택·김세경(金世暻)·김한욱(金漢郁) 등 홍원교구 지도자들과 회합하였다. 이날 모임에서는 주익면의 장날인 3월 16일 만세시위를 전개하는 문제와 독립선언서를 함남 일대에 배부하는 문제 등이 논의되었다. 강인택 등은 3월 13일 학천면(鶴泉面) 풍산리(豐山里)에 있는 강연상(姜鍊翔)의 집에서 등사판으로 독립선언서 1,000장을 등사하는 한편, 독립 깃발을 만드는 등 만세시위 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13일 강연상의 집에서 만세시위에 대해 듣고 이에 동조하여, 운포면 관흥리(觀興里)의 이춘익(李春益) 등 다수에게 16일 만세시위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16일 오전 11시 주익면 성동리(城東里) 장터에는 수백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공성상회 앞에서 강인택과 김상봉(金相鳳)의 연설이 있고 난 뒤, 깃발을 든 김기흥(金基興) 등과 함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7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홍원군청까지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군청 앞에서 더욱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부르자, 일제 경찰은 시위 주도자들에게 붉은 잉크를 뿌려 주도자임을 표시하며 만세시위를 제지하였다. 하지만 제지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만세운동을 이어 나가자 일제 경찰은 무력으로 이를 진압하고 해산시켰다. 이후 일제 경찰은 옷에 붉은 잉크가 묻은 주동 인물들을 중심으로 시위대를 잡아갔는데, 그 규모가 무려 60여 명에 달하였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1919년 4월 26일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6월 14일 경성복심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지만,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7월 9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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