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海文
鄭海文1882. 2. 7 ~ 1947. 4.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1~2일 괴산군 장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82년 2월 7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장연면(長延面) 오가리(五佳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2일 괴산군 장연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장연면의 만세운동은 향리에서 한학(漢學) 연구와 후학 양성에 노력하던 김의현(金義玄)·김의대(金義大) 형제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김의현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례하는 봉도단(奉悼團)의 일원으로 동생 김의대와 수제자인 박영래(朴泳來)를 대동하고 서울로 상경하였다. 이들은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당시 서울에서 학생들의 주도로 전개되었던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이에 크게 공감하여 장연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겠다는 뜻을 품고 귀향하였다. 양신집(梁信集)·김일곤(金日坤)·지도원(池道元) 등과 함께 김의현·김의대 형제로부터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과 장연면에서 거사를 일으킬 계획을 듣고,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다. 그리고 이들과의 논의를 통해 거사일을 4월 1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수백 장을 제작하였다. 4월 1일 김의대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한 오가리 주민 100여 명을 규합해 장연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주민들을 지휘하여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치고, 일제의 말단 식민통치기관인 면사무소로 가서 건물의 일부를 파괴하고 해산하였다. 이날 밤 김의현의 집에서 다시 회의가 소집된다는 통보를 받고 참여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30여 명이 모인 이 회의에서 김의대는 다음날인 4월 2일 밤 다시 장연면사무소를 공격해야 한다고 강하게 역설하였다. 동생의 의견에 뒤이어 김의현은 “4월 2일 밤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독립만세를 외칠 예정이다. 만일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그 마을을 파괴하겠다”라는 내용의 통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김의현의 지도에 따라 이 통문을 장연면 내의 추점리(楸店里)·광진리(廣陳里)·방곡리(方谷里)·조곡리(鳥谷里) 등 각 마을에 회람시켜 만세시위에 대한 주민들의 동참을 독려하였다. 4월 2일 밤 면사무소 공격을 위해 김의현·김의대·박영래·양신집·지도원·김일곤·박석업(朴錫業) 등과 함께 주민 300여 명을 규합하였다. 김의현의 지휘에 따라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다시 면사무소의 건물과 각종 기구·집기 등을 파괴하였고, 서류·장부 등을 파기하였다. 그리고 장연면장의 사택을 공격하여 문 등을 파손하였다. 이날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헌병과 연풍면(延豊面)에 주둔하고 있던 보병파견대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8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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