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필
金光弼1894 ~ 1936. 11.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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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94년경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상서면(上西面) 봉오리(峰吾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26세로 철원간이농업학교(鐵原簡易農業學校)를 나와 밤나무골에 살며 농촌지도자로서 뽕나무 재배와 누에치기를 가르쳤다. 장인인 강명하(姜明夏)는 함경도 사람으로 의병 활동을 하다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이곳으로 피신하여 살고 있었다. 화천군 상서면에서는 1919년 3월 28일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월 27일 봉오리에서는 이준극(李俊極)의 집에서 뽕나무 묘목 문제를 안건으로 하는 마을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같은 동네 사는 박용구(朴容九), 구장인 이창선(李昌善)과 협의하여 참석자들에게 만세 운동을 일으킬 것을 독려하였다. 이들은 대형 태극기를 만들고 여러 마을에 통문을 돌렸다. 심경지(沈敬之)·이재영(李載榮)·김정구(金鼎九)·이응선(李應善) 등은 봉오리의 주민 동원에 나섰다. 파포리(巴浦里)에서는 정석화(程錫和), 다목리(多木里)에서는 당시 서당 훈장이던 이규하(李圭夏)를 비롯하여, 함여성(咸汝成)·송흥만(宋興萬)·박치근(朴致根) 등이 만세 시위 준비에 나섰다. 산림간수인 박희진(朴喜眞)도 도왔다. 이튿날인 3월 28일 장날 새벽부터 모인 봉오리 시위 군중을 규합하여 먼저 뒷산에 올라가서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불러 인근 주민에게 만세 시위 소식을 알렸다. 곳곳에서 몰려든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을 이끌고 상서면 면사무소에 도착하였다. 먼저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기물을 파괴하고 면장 정종하(鄭鍾夏)와 면서기를 끌어낸 뒤 독립 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면장과 면서기 3명을 끌고 화천면(華川面)으로 행진하였다. 파포리 앞의 미륵고개에서는 도로 공사로 출장 나온 일본인 기사도 잡아서 끌고갔다. 상서면 산양리(山陽里)에 있던 헌병주재소에서 출동한 헌병 3명을 공격하여 헌병보조원인 박도진(朴道鎭)을 끌고 갔다. 시위 군중이 화천면 안으로 행진하며 독립 만세를 부르자 구운리(九雲里)·논미리(論味里)·신풍리(新豊里)·신대리(新大里)에서 합세하면서 시위 군중은 2,000여 명에 달하였다. 이때 헌병분견소 헌병과 춘천에서 파견된 수비대가 출동하여 신풍리 앞 주막거리에서 도시락을 먹던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여 그 자리에서 4명이 숨졌다. 이 시위에 참여한 일로 붙잡혀 1919년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태형(笞刑) 90도(度)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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