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文三
曺文三188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4)
관련 사건
- · 1919년 안성군 이죽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4)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이죽면(二竹面) 매산리(梅山里, 현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나이가 39세이므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2일 안성군 이죽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안성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1일 안성 읍내에 위치한 안성공립보통학교와 양성면(陽城面) 동항리(東恒里)의 양성공립보통학교 재학생들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작되었다. 이후 안성군의 만세시위는 소강상태를 보이다 3월 28일 원곡면, 안성 읍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4월 1일 이죽면에서도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죽산리(竹山里)에 위치한 죽산공립보통학교의 재학생 50여 명은 교내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장계리(長溪里)의 주민들은 죽산리에 위치한 죽산경찰주재소와 이죽면사무소로 가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한편 장계리에 거주하는 최창혁(崔昌赫)은 김용규(金容珪)·윤규희(尹奎熙)와 함께 4월 2일 죽산시장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4월 2일 죽산시장 일대에서 수천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조선약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이인영(李仁榮)은 시장에 모인 군중을 대상으로 ‘고문(告文)’이라는 제목의 글을 나누어주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는 조선인이 일본인에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최창혁은 김용규·윤규희와 함께 죽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인솔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4월 2일 밤 8시 무렵 죽산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재개되었다. 이때 김기은(金起銀)·이주남(李朱男)·이원선(李元先)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죽산경찰주재소, 죽산우편소, 이죽면사무소, 죽산공립보통학교 일대를 행진하였다. 2,000여 명이 합세한 이 야간 시위는 4월 3일 새벽 1시경 마무리되었다가 4월 3일 새벽 5시에 다시 시작되었다. 삼죽면(三竹面)에서 온 100여 명의 시위대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이죽면사무소에 도착하였다. 이죽면사무소에 집결한 시위대 300여 명은 면사무소를 공격하였으며, 일제는 일본군 보병 79연대를 이죽면으로 파견하였다. 일본군 79연대는 죽산리 입구에서부터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였고, 시위대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죽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1919년 6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