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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萬衡

趙萬衡

1897. 2. 17 ~ 198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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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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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天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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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2월 17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동면(東面) 용두리(龍頭里, 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났다. 수신면(修身面) 장산리(長山里) 감리교회가 운영하는 장명학교(長命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이곳은 김구응(金球應)이 교사로 있었으며, 유관순(柳寬順)의 오빠 유우석(柳愚錫)도 공부하고 있었다. 유관순이 3월 1일 서울 만세운동을 목도하고 내려와 4월 1일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할 때 유중무(柳重武)·김용이(金用伊) 등과 함께 이에 찬성하였다. 장날 며칠 전부터 모닥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1919년 3월 31일 밤 진천 고갯마루에서는 봉화가 올랐다. 이튿날 오후 2시경 유중권(柳重權)·유중무·조인원(趙仁元)·조병호(趙炳鎬) 등과 함께 갈전면(葛田面, 현 병천면) 아우내장터에서 2회에 걸쳐 3,00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진천 쪽의 박봉래(朴鳳來), 천안 쪽의 조병호와 함께 수신면에서 아우내장터로 이동하는 군중의 주도자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유중무 등과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항의 시위하다 붙잡혔다. 1919년 5월 9일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부분 취소되어 징역 8월을 받았다. 곧바로 상고하였으나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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