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鶴順
鄭鶴順1892. 9. 1 ~ 1950. 10.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영암군 영암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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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2년 9월 1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군서면(郡西面) 성양리(省陽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군서면 면서기로 일하면서 4월 10일 영암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4월 6일 군서면 구림리(鳩林里)에 위치한 박찬성(朴贊成)의 상점에 박규상(朴奎相)·김재홍(金在洪)·최기준(崔琪焌)·조병식(曺秉植) 등과 함께 모였다. 이 자리에서 최민섭(崔旼燮)으로부터 조극환(曺克煥)이 영암면에서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있으며, 구림리에서도 거사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찬성하였다. 4월 7일 조극환으로부터 독립선언서 초고를 받은 최민섭은 이를 김재홍에게 전달하면서 인쇄를 부탁하였다. 같은 날 밤 조병식·박규상·최기준 등과 함께 군서면사무소에 모여 김재홍이 가지고 온 조극환의 독립선언서 초고를 면사무소 등사판을 이용하여 500장을 인쇄하였다. 동시에 박규상이 가지고 있던 선언서와 태극기 문양도 각각 100장과 50장씩 인쇄하였다. 4월 9일에는 김재홍·조병식·박규상·최기준 등과 면사무소에 다시 모여 비밀리에 인쇄를 하기 위해 등사판을 구림리 김월봉(金月奉)의 빈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조극환이 입수한 후 건네 준 “우리 동포는 영구히 자유독립으로 맹진하라”는 내용이 기재된 『조선독립신문』과 ‘혈육 모두 조선 운운’이라는 내용의 조선독립가를 각각 500장과 100장씩 인쇄하였다. 4월 10일 9시경 구림공립보통학교에 모인 학생을 포함한 마을 주민 3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앞장섰다.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로 이동하여 만세를 부른 후 다시 보통학교로 돌아와 오후 5시경 해산하였다. 하지만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고, 같은 해 6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다시 징역 1년을 받았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4월 29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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