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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學淳

鄭學淳

1897. 3. 11 ~ 1920.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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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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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南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남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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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남해군 남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3월 11일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설천면(雪川面) 문항리(文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남해군 남해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남해면의 만세시위는 경남 하동군(河東郡)의 만세시위 당시 작성된 ‘대한독립선언서’가 사용되는 등 하동군의 만세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4월 2일 설천면 문의리(文義里)에 사는 이예모(李禮模)가 하동에서 대한독립선언서를 받아온 것을 계기로 만세시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정순조(鄭順祚)·정몽호(鄭夢虎)·윤주순(尹柱舜) 등과 함께 이예모의 집에서 거사 실행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태극기 제작과 독립선언서 등사, 군내 각 마을에 대한 연락 등 구체적으로 준비를 진행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남해면 읍내 시장의 장날인 4월 4일 2시 경부터 정순조·윤주순 등 주도자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먼저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자, 시장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이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따라 불렀다. 시위대를 지휘하여 남해경찰관주재소, 남해군청, 금융조합 사무실, 우편국, 공립보통학교 등 식민지 지배의 억압과 수탈을 상징하는 기관 등으로 몰려가 만세를 불렀다. 이어서 건물 내부로 들어가 유리창을 깨고 책상 등 집기를 파괴하는데 앞장섰고, 직원들에게도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권유하였다. 또한 주재소로 들어가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일제 경찰 등에게도 만세를 부르도록 압박하였다. 이어서 시위대와 함께 군청으로 들어가 군수에게 만세를 부르도록 요청하였다. 사천(泗川)경찰서에 파견한 지원병력이 도착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강제로 진압을 시작하자, 결국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이 만세시위 관련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8월 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9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1920년 6월 29일 옥중에서 고문 후유증 등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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