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云朝
鄭云朝1888. 8. 15 ~ 1951. 7.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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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88년 8월 15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웅천면(熊川面) 남문리(南門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정공조(鄭公朝)·정동(鄭東)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웅천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창원군 만세운동은 3월 하순부터 4월말에 걸쳐 군내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웅천면 성내리(城內里)에서는 3월 20일 만세시위를 추진 중에 발각된 바 있어, 창원군 내에서 가장 선도적이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축적되어 4월 3일 웅천면 만세운동이 추진되었다. 주기용(朱基溶)·문석주(文碩柱)·김병화(金炳化) 등과 함께 만세시위의 계획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4월 3일 웅천면 만세시위 준비는 일제 군경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장소를 바꿔가며 논의를 진행하였다. 거사일은 4월 3일로 잡았고, 장소는 웅천면 마천리(馬川里)에 있는 면사무소 앞으로 결정하였다. 군중 동원을 위한 면내 각 마을별 연락, 시위 참가 군중에게 나눠줄 태극기 제작 등의 거사 준비를 위한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거사 준비 도중에 문석주와 함께 발각되어 일제 헌병대에 검거되었다. 일제 헌병들의 고문을 동반한 혹독한 조사에도 계획을 누설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4월 3일의 만세시위는 계속 추진될 수 있었다. 이 일로 1919년 5월 21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당시 부산감옥 마산분감에서 옥고를 겪고 같은 해 9월 21일에 풀려났다. 이후 사회 활동과 민족운동을 지속하였다. 1928년부터 웅천소작조합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집행위원으로 사회문제였던 소작농 문제의 해결을 위한 활동을 적극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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