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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龍允

鄭允

1885. 8. 2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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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龍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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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서흥(瑞興)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서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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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1919년 서흥군 내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1885년 8월 20일 황해도 서흥군(瑞興郡) 내덕면(內德面) 상석리(上石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4일 서흥군 내덕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3월 1일 전후로 황해도 서흥군 일대에서는 천도교와 개신교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4월 4일 내덕면 상석리(上石里)의 만세시위는 박병익(朴炳益)·김응률(金應律)·염우익(廉愚益) 등이 주도하였고, 이들은 만세시위에 배포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은밀히 제작하였다. 4월 4일 아침 개신교인을 중심으로 한 1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박병익의 집 마당에 모였다. 김응률은 “조선이 독립되었으니 만세를 부르자”는 취지의 연설을 하였고, 박병익 등은 시위대에게 미리 제작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박병익 집에서 나와서 행진을 시작하였으며, 만세시위에 찬동하는 주민들을 독려하여서 시위대에 합세하도록 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신촌리(新村里) 헌병주재소로 진출하였다. 내덕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군경에 붙잡혀서 재판에 넘겨졌다.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시위대를 선동한 사실이 없으며, 파리강화회의에서 조선의 독립을 승인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만세를 외친 것은 보안법 위반이 되지 않는다”면서 상고하였다. 그러나 그해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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