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龍得
鄭得1885. 7. 28 ~ 1932. 1.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1919년 울산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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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85년 7월 28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상북면(上北面) 등억리(登億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울산군 언양면(彦陽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 등 7개 도시에서 만세운동이 일제히 일어났고 전국적으로 운동이 확산되어갔다. 3월 30일 울산군청 명의로 각 면에 면 소속 관리들에게 사직하라는 격문이 전달되었다. 아울러 울산군 상남면(上南面)에서는 천도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 계획이 추진되었다. 상남면 길철리(吉川里)에 거주하는 이무종(李武鐘)·이규인(李圭寅)·이성영(李成榮)·강경찬(姜庚贊)·최해선(崔海璇)·이규경(李圭庚)은 언양 장날이 열리는 4월 2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그런데 천도교도 최해규(崔海圭) 형제와 곽해진(郭海鎭)·유철순(兪哲淳)이 일제 군경의 예비 검속에 포함되었다. 그럼에도 이무종을 비롯한 시위 주도자 6인은 4월 1일 밤에 이규인 소유의 빈 집에 모여서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4월 2일 이무종 등은 태극기를 비밀리에 휴대하고 언양 장터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장터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준 후 장터 한복판인 남부리 도로 위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 주도인물들에 호응해서 언양 장터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장터에 모인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해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언양주재소로 향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주재소의 일제 군경을 향하여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시위대 일부와 함께 일제 순사의 총기를 탈취하는 등 육박전을 전개하였는데, 일제 수비병은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를 하였다. 총격으로 시위대 1명이 즉사하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격을 앞세운 일제 군경의 무력 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명목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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