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龍奎
鄭龍奎1880. 7. 1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1919년 이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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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880년 7월 17일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용포면(龍浦面) 창전리(倉田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으로 1919년 4월 6일 이천군 이천면 탑리(塔里)에서 펼쳐진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천군에서는 천도교인들에 의하여 3월초 독립선언서가 배포되면서 만세운동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천면 탑리 만세운동은 이천면 남좌리(南佐里) 천도교인 박재곤(朴在坤)·이원모(李元模)가 거사 하루 전 4월 5일에 논의 끝에 탑리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계획하였다. 거사 당일 같은 마을에 사는 김연옥(金淵玉)·손은국(孫銀國)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창전리에는 해마다 봄 고사가 개최되는데 여기에 주민 100여 명이 모이자 시위를 실천에 옮겼다. 고사가 끝난 이후 김연옥·손은국과 협의한 후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주민들을 향하여 “지금부터 이천 읍내로 가서 만세를 소리치자”고 하였다. 만세운동 권유에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시위가 시작되었다. 저녁 10시경 선두에서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앞세우고 창전리 주민들을 이끌었다. 1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창전리를 지나 이천면 비석리(碑石里)를 거쳐 탑리시장에 이르렀다. 탑리시장은 이미 오후에 박재곤·이원모가 주도하여 만세운동이 전개된 이후로 만세운동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장터를 순회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은 무력으로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주도인물들을 붙잡았다. 이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상고하였지만, 그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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