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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宣一

崔宣一

1892. 7. 1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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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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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용강(龍岡)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용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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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1919년 옹진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1892년 7월 15일 평안남도 용강군(龍岡郡) 용월면(龍月面) 송석리(松石里)에서 태어났다. 서당 교사로 일하였으며 천도교인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3일 황해도 옹진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날 즈음에 세간에서 “올봄에 만국평화회를 소집하여 병합된 여러 나라를 독립시킬 것이다”라는 소문을 듣고 1919년 3월 3일에 황해도(黃海道) 옹진군(甕津郡) 동남면(東南面) 전당리(錢塘里)에 사는 동료 교인 김응두(金應斗)의 집에 찾아갔다. 그곳에서 옹진군 마산면(馬山面)의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들은 뒤 만세시위에 가담하기로 결심하였다. 마침 당일이 옹진군 장날이라 장날을 이용해 기독교 측과 천도교 측이 연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는데, 이에 합류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다가 일본군 헌병대에 연행되었다. 3월 18일 잠시 풀려났으나 재차 소환당하여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4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2심에서는 징역 1년을 받았다. 곧바로 상고하였으나 1919년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해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4월 27일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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