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車明輪

車明輪

1907 ~ 193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車明輪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함남 영흥(永興)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영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영흥농민조합
  • · 영흥청년동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머슴파업사건(농군파업사건)
  • · 영흥농조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07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차명윤(車明潤·車明允)이다. 1931년 영흥농민조합(永興農民組合) 간부로서 영흥 지역 농민운동과 소작쟁의를 주도하였다. 1928년 3월 4일 개최된 영흥청년동맹(永興靑年同盟) 진평지회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회 정치문화부(政治文化部) 소속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이날 영흥농민동맹진평지부(永興農民同盟鎭坪支部)·영흥노동동맹진평지부(永興勞動同盟鎭坪支部) 조직과 기관지 발간 등이 결정되었다. 1930년 12월 영흥농민동맹이 순무산농민(純無産農民)의 단결체를 목표로 개편한 영흥농민조합에 참여하였다. 경제투쟁뿐만 아니라 전 영역에 걸쳐 폭넓게 활동을 전개하여, 1931년 말에는 9개의 면 단위 지부와 170여 개의 반(班) 조직이 설립되었으며, 그 회원이 12,000여 명에 달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1931년 7월 24일 영흥군 억기면(憶岐面) 오포리(梧圃里)에서 박용우 등 40~50명의 농민조합원과 함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전개하였다. 같은 달 26일에는 50~60명의 군중이 곤봉 등을 가지고 지주 측과 대치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이른바 ‘머슴파업’ 혹은 ‘농군파업(農軍罷業) 사건’으로 불렸는데, 이 일로 영흥농민조합과 영흥청년동맹원인 박종윤(朴鍾允)·정수일(鄭守一) 등이 조합원들과 체포되었다. 이때 배후에서 선동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의 추적을 받았으나 다행히 포위망을 피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영흥 지역의 농민조합과 지주 측 간의 소작쟁의와 파업투쟁이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발생하여 그 갈등이 심화되는 와중에, 1931년 10월 영흥농민조합이 주도한 시위 중 조합원이 일제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대규모의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이후 영흥농민조합의 간부와 조합원 다수가 체포되었고, 같은 달 24일 억기면 일대에서 진행된 무장 수색 작전을 통해 최병권(崔秉權)·권태윤(權泰允) 등 동지 28명과 용천리(龍川里) 자택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호송 과정에서 용천리 앞 유모로재(柳慕老峙)에 잠복하고 있던 차진상(車鎭相) 등 10여 명이 각각 손에 낫과 큰 돌을 가지고 경관대에 대항하여 “차명륜 군을 방면하지 않으면 죽인다”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동료를 탈환하고자 위협하여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31년 12월 20일경 검찰로 압송되었고 1932년 4월 22일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예심이 종결되기도 전인 1933년 1월경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이후 공소기각으로 처리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