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道源
韓道源1906. 1. 1 ~ 1984. 5.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병인의용대
- · 맹혈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상해 맹혈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6년 1월 1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고평면(古平面) 신흥리(新興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국화(李國華)·왕소산(王少山)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金九)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의열투쟁에 참여하여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와 맹혈단(盟血團·猛血團) 등에서 일제 기관 파괴, 일제 요인과 밀정 저격, 비밀 연락과 전달책 등으로 활동하였다. 평양(平壤)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를 중퇴하고, 매부 김예진(金禮鎭)에 의탁하여 1925년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현지에 있는 전차회사 차장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926년 1월 상하이에서 정위단(正衛團)을 모체로 박창세(朴昌世)·강창제(姜昌濟)·김창건(金昌健) 등과 함께 독립운동 중심단체로서 임시정부의 권위와 정신을 지지하며, 일본 제국주의 시설 파괴와 그 요인 및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목적으로 설립된 병인의용대를 조직하는데 합류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12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일왕(日王) 저격 의거를 준비 중이었던 이봉창(李奉昌)에게 군자금과 폭탄 및 권총을 전달해 주었다. 10여 일 후 도쿄에서 ‘곡물시세 맞아서 콩은 1월 8일에 팔겠다’라는 거사일 결정 암호 전문을 받아 김구에게 전달하는 등 의열투쟁에 있어 중요한 연락·전달책 활동을 하였다. 1934년 초 김구의 비밀명령으로 일본총영사관 후지이(藤井) 경부보의 밀정으로 일하면서 일본 비밀 정보를 파악하였다. 같은 해 10월 4일 남경중앙군관학교(南京中央軍官學校) 입학시험에 응시하여 동료 조선인 학생들과 합격하여 입교한 후 군사 간부 훈련을 받았다. 1936년 초 김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오면직(吳冕稙)을 단장으로 하여 일본 제국주의와의 의열투쟁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 맹혈단을 함께 조직하고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벌이고자 하였다. 일제 밀정 옥관빈(玉觀彬) 처단, 상하이 일본영사관 투탄, 이시이(石射) 총영사 암살계획 등을 수행하기 위해 맹혈단원 10여 명과 함께 상하이 홍커우구(虹口區)에 있는 일본총영사관을 습격하여 일제 요인과 친일파 밀정들을 암살하고자 하였으나 영사관을 폭파하기 위한 작업 도중 발각되어 붙잡혔다. 1936년 3월 단장 오면직을 비롯한 김승온(金勝溫)·김정근(金正根) 등 맹혈단원과 함께 붙잡혀 인천(仁川)을 거쳐 평양으로 송환되었다. 당시 ‘상해 맹혈단 사건’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파급력이 컸던 사건이었고, 1937년 6월 5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및 폭발물취체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7월 2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3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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