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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奭基

韓奭基

1885. 5. 18 ~ 196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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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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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경성(鏡城)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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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연통제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1885년 5월 18일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에서 태어났다. 한학(漢學)에 해박하였다고 한다. 1920년 5월부터 간도(間島) 허룽현(和龍縣) 지신사(智新社) 대납자(大拉子)의 중국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는데, 국내의 연통제 조직이 와해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을 통해 정희용(鄭熙鎔) 등과 연통제 재건을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내무부 직할의 각도 독판제(督辦制), 간도에 총판부(總辦部)를 설치 운영하기로 하고, 함경북도 회령군 팔을면(八乙面) 금생동(金生洞)에 연통제 지부를 설치하였다. 이를 통해 임시정부와 연락하여 연통제 조직을 재건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다가, 최방연(崔枋衍)·김희균(金熙均) 등과 회령경찰서와 함경북도 경찰부에 붙잡혔다. 1921년 11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을 거쳐 1922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상하이 임시정부의 지시에 따라 독판부 및 지회 설치를 협의하고 문서를 상호교부, 무기를 보관, 교부하며 운동자금을 모집하며 독립운동을 실행하였다’는 이유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폭발물 취체 벌칙 위반 등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이후 지신사장(智新社長)과 지신사 보장(保長) 등을 역임하고, 1938년 11월에는 지신촌장으로 한인 촌민의 신망을 얻어 촌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진정문을 작성하였으며, 협화회(協和會) 분회 부회장, 허롱구법원(和龍區法院) 조정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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