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重九
趙重九1880. 1. 14 ~ 1942. 7.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의군부
- · 임시의정원
- · 중한호조사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0년 1월 14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서도면(西道面) 장토리(長土里)에서 태어났다. 직업은 1915년 당시 농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명으로 조환지(趙煥之)를 사용하였다. 의병장 임병찬(林柄瓚)이 1912년 조직한 비밀결사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의 군자금모집사건에 연루되어 1915년 3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독립의군부는 국내에 잔존하고 있던 의병세력과 유림세력을 규합하여 결성된 단체이다. 1913년 겨울부터 독립의군부 관련 인사인 윤이병(尹履炳)·윤호(尹浩)·유병심(柳秉心)·신규선(申奎善) 등이 중심이 되어 군산(群山) 부근에 비밀결사 조직인 대한교민광선회(大韓僑民光鮮會)를 결성하였다. 국외와의 연계를 도모하고자 서간도로 나아가 1914년 5월 서간도 퉁화현(通化縣) 하니허(哈泥河)에서 광제회(光濟會)를 결성하자 이에 참여하였다. 1914년 9월 윤호와 윤이병이 군자금 모집과 국내조직과의 연계를 담당하기로 하고 격문(檄文)을 수령한 후 비밀리에 서울로 잠입하자, 동지들에게 서간도의 조직과 상황을 알리고 숨겨 들여온 미주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新韓民報)』도 전달하여 해외 독립운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였다. 1915년 3월 김창식(金昌植)을 비롯하여 이기영(李起永)·강봉주(姜鳳周)·이용철(李容轍)·정철화(鄭哲和)·김현각(金顯珏) 등과 독립의군부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던 중 붙잡혔으나 경성지방법원에서 면소로 풀려났다. 1917년 중국으로 건너가 1920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22년 4월 21일 제10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의원사면 청원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3월 12일부터 8월 10일까지 황영희(黃永熙)와 더불어 임시정부 외무부(外務部) 임시선전원(臨時宣傳員)으로 임명되어 후베이성(湖北省) 등 중국 남부의 주요 도시를 순방하면서 중국 각계의 친의(親誼)와 원조를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와 전단 배포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한·중 친선 및 한국 독립과 중국혁명을 위한 상호 협조, 경제·상업·교육 방면에 대한 상호 원조를 목적으로 상하이의 프랑스조계 푸스로(浦石路) 14호에서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를 조직하고, 한국측 대표 조동호(趙東祜)를 비롯해 오희원(吳熙元) 등과 간사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2년 9월 상하이에서 중한호조사 제2회 정기대회 이사회가 개최되었다. 정이사장(正理事長) 오산(吳山)과 부이사장(副理事長) 김규식(金奎植) 아래에 조동호·오희원·이사림(李士林) 등과 함께 교제과 간사로 선임되어 한중 양국의 친선과 공동 항일운동을 위해서 진력하였다. 1923년경 베이징 지역으로 이주하여 옌칭(燕京)대학 기숙사에 거주하면서 중국 각계의 한인 문제 원조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10월 상하이 중국공산당원 이우민 일파가 조직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의열단의 선전원으로 기부금을 모집하고자 권총을 가지고 국내로 잠입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강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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