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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36. 4. 14 ~ 1907.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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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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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선산(善山)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선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허훈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전기의병(허훈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36년 4월 14일 경상북도 선산군(善山郡) 구미면(龜尾面, 현 구미시 원평동) 임은리(林隱里)에서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와 진성 이씨(眞城 李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자는 순가(舜歌)이며, 호는 방산(舫山)이다. 어릴 때 이름은 도문(道文)이다. 고조부 허박(許璞) 때까지 경상남도 김해(金海)에서 살다가, 증조부 허돈(許暾)이 1807년 임은리로 이주하였다. 셋째 동생인 성산(性山) 허겸(許兼)은 허위의 유족을 데리고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다가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넷째 동생인 왕산(旺山) 허위(許蔿)는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13도창의군을 결성하여 군사장(軍師長)으로 활동하다가 1908년 체포됨과 동시에 사망하였다. 어린 시절에는 할아버지로부터 가학을 전수받고, 결혼 이후에는 장인을 통해 문장을 수련하면서 과거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20대 이후 조부가 사망하면서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러다가 1864년 근기남인의 적통을 계승한 회재(性齋) 허전(許傳)이 김해부사로 내려오자 다시 그 문하로 입문한 후, 재야 학자의 길을 가기로 작정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자 유주목(柳疇睦)에게 편지를 보내 “듣건대 사교(邪敎) 괴수(魁帥)가 이미 체포되어 국청을 개설했다고 하니, 더러운 무리들이 앞으로 영원히 없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에 대해서도 일본인 하나부사(花房義質)가 군사를 이끌고 서울에 들어와 서쪽 천연정(天然亭)에 자리 잡았던 일과 그해 6월 군사들이 난을 일으켜 신하를 죽이고 궁궐에 난입하여 왕비가 충주로 급히 몸을 피했던 일 등을 모두 언급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 제국주의 세력에 대하여 척사론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특히 김제휴(金濟休)와 이중철(李中轍) 등에게 편지를 보내 이를 회복하는 데 분발할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1894년 동학동민운동이 일어나자, 지천동의 집을 버리고 진보현(眞寶縣) 흥구리(興丘里)로 피난하였다. 이때 친정으로 보낸 둘째 며느리를 잃었고, 또 숙모상을 당하였으나 문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자행되고 단발령(斷髮令)까지 내려져 전국적으로 일제히 의병이 일어났다. 이때 여러 사람들로부터 시국문제에 직접 나서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제자인 장지연(張志淵)도 편지를 보내 관중(管仲)과 제갈공명(諸葛孔明)처럼 세상을 구하는 데 나서주기를 요청하였다. 을미사변 직후에는 안동지역 의병장인 권세연(權世淵)에게 동참을 권하는 편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권유를 완곡하게 거절하고 의병을 후원하는 역할을 자처하였다. 그러면서 셋째 동생 허겸에게는 진보지역의 창의장을 대신 맡도록 하였고, 김천지역 의병의 참모장인 넷째 동생 허위를 후원하였다. 이후에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의 원장직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전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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