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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必守

鄭必守

1869. 1. 1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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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必守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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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위원(渭原)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위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 ·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 · 참의부(參議府)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1869년 1월 10일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 서태면(西泰面) 용문동(龍門洞)에서 태어났다. 1903년 만주로 건너가 펑톈성(奉天省) 지안현(輯安縣) 유수림자(楡樹林子) 간창구(干昌溝)에 거주하였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정필수(鄭畢洙)를 썼다.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참의부(參議府)에 참여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대한독립단의 단원이 되어 항일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23년 (음)1월 대한통의부에 가입하였고, 1924년 (음)2월에 참의부로 이적하였다. 검찰(檢察) 겸 재무원(財務員)으로 지방을 돌며 독립단원을 모집하고 청년들을 교육·훈련시키는 활동을 하였다. 1924년 가을 안둥현(安東縣, 현 단둥시)에서 대형 권총과 탄환을 구입하여 참의부 제4중대에 공급하였다. 1927년 6월에도 권총과 탄환을 매입하여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붙잡혀, 1932년 6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임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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