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始華
韓始華1911 ~ 1931. 4.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정평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정평적색농민조합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문산면(文山面) 은흥리(殷興里)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11년생으로 추정된다. 1930년 정평농민조합(定平農民組合)에 가입하고 정평 지역 농민운동을 주도하였다. 1930년 정평농민조합에 가입하고 소작료 감면, 소작권 강제 이동 반대, 소작 쟁의권 획득,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획득,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 문맹 퇴치와 봉건적 억압 타파 등을 주장하였다. 일제 경찰은 정평농민조합 지도 아래 농민운동이 크게 확산되자, 정평농민조합에서 경영하는 야학(夜學)을 폐쇄하고 일상적인 집회를 금지하는 등 방해공작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또한 청년운동가들이 이끄는 정평농민조합을 반대하는 장·노년층을 사주하여 농민조합 활동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이도록 조장하였다. 이처럼 일제의 탄압과 내부 대립으로 인해 정상적인 조직 활동이 난관에 부딪히자, 같은 해 8월 이후 비합법 투쟁으로의 전환을 결정하였다. 이후 항일격문을 배포하여 농민운동을 고양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같은 해 8월 18일 김영두(金永斗)와 이봉래(李鳳來)를 정평군 춘류면(春柳面) 화동리(禾洞里)에 있는 자택으로 초대하여 항일격문 작성·인쇄·배포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 결과 「전투적 노동자 빈농(貧農)에게 격문을 띄운다」라는 제목의 항일격문을 직접 작성하였다. ‘노동자 빈농으로써 일어난 혁명적인 단천사건(端川事件)을 보라! 정치적 박해, 경제적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아울러 일어나 평양(平壤) 고무직공이 궐기한 동맹파업을 보라! 우리들의 피로써 우리 동지를 구원하고 장대한 투쟁을 전개하라. 싸우는 곳에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미래 사회가 돌아온다’ 라는 내용의 격문을 연필로 작성한 후 김영두에게 등사용 원고지에 이를 옮겨 적게 하였다. 그리고 이봉래에게 등사판을 이용하여 인쇄하도록 부탁하였다. 총 50장의 격문이 인쇄되었고, 같은 날 밤 춘류면 화동리와 내동리(內洞里)에 격문을 배포하였다. 그해 (음)11월 6일 항일격문 배포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 정평경찰서(定平警察署)에 붙잡혔다. 취조를 받던 도중 정평유치장의 열악한 위상 상태로 인해 천연두에 감염되었고, 정평의원(定平醫院)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10여일 만에 간신히 회복되었다. 곧바로 유치장에 구금되었지만, 다시 골막염(骨膜炎)으로 치료를 위해 함흥도립병원(咸興道立病院)에 입원하여 수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모진 유치장 생활로 이미 심신이 허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 호전되지 못하고, 결국 다량의 출혈로 인해 1931년 4월 1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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