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亨信
曺亨信1900. 8. 9 ~ 1970. 5.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청년단
- · 대한독립여자청년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모락장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0년 8월 9일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에서 조진탁(曺振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평남 강서군 모락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으며,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 대한독립여자청년단(大韓獨立女子靑年團)을 조직하였다. 1919년 당시 평남 대동군(大同郡) 금제면(金祭面) 원장리(院場里)와 강서군 반석면(班石面) 상사리(上四里) 사이에는 5일장인 모락장이 섰다. 원장리와 모락장 중간쯤에 위치한 반석교회(盤石敎會) 장로인 아버지 조진탁은 그해 3월 1일 평양(平壤)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몇 장의 독립선언서를 얻어 돌아왔다. 곧이어 반석교회·원장교회 등과 연합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 소식을 알게 된 모락장교회에서도 목사 송현근(宋賢根)을 중심으로 시위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헌병보조원에 발각되어 10여 명이 검거되었다. 3월 4일 10시 원장리에 있는 합성학교 운동장에서는 독립선포식이 거행되었다. 이때 모락장 시위가 사전에 발각된 사실을 안 시위 군중은 동지들을 구한다며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헌병대가 있는 상사리로 향하였다. 8천여 명을 헤아리는 시위 군중이 모락장 입구에 들어서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제 헌병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격분한 시위 군중은 헌병 주재소장 사토(佐藤實五郞)와 헌병 보조원 3명 전원을 처단하였다. 그리고 유치장에 갇혀 있던 동지들을 모두 구출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일제 헌병대는 즉시 현장에 출동하여 400여 명을 체포하였다. 3월 4일 아버지와 함께 만세시위를 이끈 뒤, 평양으로 피신하였다. 아버지는 원산(元山府)으로 피신하였으나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받았다. 결국 1921년 붙잡혀 이듬해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1919년 10월 김예진(金禮鎭)·최봉주(崔奉周) 등과 함께 강서에서 대한청년단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었다. 1920년 4월 반석교회 부속 반석학교 여학생 교실에서 대한독립여자청년단(大韓獨立女子靑年團)을 조직하였다. 두 단체 모두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고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신문』을 배포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1921년 2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그해 4월 5일 평양지방법원 진남포지청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2년 6월 가출옥으로 풀려난 뒤 북간도로 망명하여 홍범도(洪範圖) 휘하에 있던 강진석(姜晉錫)을 찾아가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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