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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紀淡

趙紀淡

1893. 6. 9 ~ 1979.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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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紀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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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金堤)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김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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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3년 6월 9일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백구면(白鷗面) 부용리(芙蓉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임성(趙壬誠)이고, 어머니 임천 조씨(林川 趙氏)이다. 이후 김제군 김제(金堤面)면 옥산리(玉山里)에 거주하였다.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호는 운정(雲汀)이다. 부인은 김제 조씨(金堤 趙氏)이다. 전북 지방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 무렵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동지를 규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미곡상(米穀商)으로 위장하여 군산(群山) 지역에서 활동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심을 거쳐 1917년 6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사기죄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군자금 모집 활동을 재개하였다. 1920년 김환(金桓)·이상규(李祥奎)·신헌(辛憲)과 함께 지방의 자산가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보내고, 동시에 청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인천(仁川)에서 임시정부 소속 애국금 모집위원 이의(李儀)을 만나 동의를 얻었다. 1920~1921년 무렵에는 김제 지역 자산가 조재돈(趙在敦)·나갑순(羅甲淳) 등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이의와 함께 임시정부 재무총장 명의의 「사령서」를 보여주며 “국권회복을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고 있으니 한인으로서 응분(應分)의 출금(出金)”할 것을 요구하였다. 조재돈이 가지고 있는 돈이 없다고 거절하자, ‘1921년 (음)1월 30일까지 200원을 교부하겠다’라는 증서를 쓰도록 하였다. 나갑순에게도 똑같이 요구하여 50원을 교부하겠다는 증서를 받았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21년 3월 2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공갈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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