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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贊西

黃贊西

1873. 3. 30 ~ 1919.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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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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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南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남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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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남원읍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73년 3월 30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남원면(南原面) 왕정리(王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남원군 남원읍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소식은 전북 남원군에도 전파되어 남원읍에서도 장날을 이용해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4월 4일 일어난 남원읍 만세시위는 전날인 4월 3일 남원군 덕과면장(德果面長) 이석기(李奭器), 면서기(面書記) 조동선(趙東先) 등이 주도했던 덕과면 시위의 여파로 일어났다. 이날 사매면(巳梅面) 오신헌병주재소(梧新憲兵駐在所)에 구속되었던 이석기 일행이 4월 4일 오전에 남원읍으로 압송되자, 이형기(李炯器)·이성기(李成器) 등 이석기의 일족이 구출하기 위해 남원읍 북(北)시장에서 군중을 선동하여 만세를 부르도록 한 데서 촉발하였다. 당일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원읍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남원 북시장 일대를 행진하던 시위 행렬과 함께 남원읍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남원헌병분대로 나아갔다. 이 소식을 듣고 미리 장날 시위가 일어날 것을 경계해 수비하고 있었던 일제 헌병대는 시위 군중에게 해산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해산시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시위대가 해산을 거부하고 저항하자, 일제 헌병들은 무차별 사격을 가하면서 시위대를 살상하였다. 이날 일제 헌병의 무차별 사격으로 방극용(房極鏞)·방진형(房鎭炯)·방명숙(房明淑) 등 8명의 시위 참가자가 현장에서 사망하였으며, 1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일제의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일제 헌병의 총탄을 맞고 중상을 입어 전주(全州)의 자혜병원(慈惠病院)에서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4월 19일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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