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환
權泰煥1891. 8. 8 ~ 1950. 2.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임동면‧임북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8월 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북면(臨北面) 사월리(沙月里, 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성관(聖觀)이다. 안동에서는 1919년 3월 17일, 18일 예안면과 안동면의 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군내 만세 시위가 본격화하였다. 임동면(臨東面)에서는 유연성(柳淵成)이 주도하여 동지들을 규합하고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5일 중평동(中平洞) 편항(鞭巷) 시장 동쪽에 자리한 공동 타작장에 모인 유연성·유동수(柳東洙)·이강욱(李康郁)·박진성(朴晋成)·박재식(朴載植)·유교희(柳敎熙)·홍명성(洪明聖)·유곡란(柳谷蘭) 등은 거사 일을 3월 21일 편항시장 장날로 정하고, 마을별로 흩어져 군중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사전에 만세 운동의 소식을 듣고, 거사 당일인 3월 21일 편항시장으로 나갔다. 주동자들의 독립 만세 선창으로 시위가 시작되었을 때, 편항시장에 모인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쳤다. 이후 시장을 행진하면서 계속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경찰주재소에서 순사 2명이 나와 군중을 제지하려다가 기세에 눌려 다시 주재소로 도망갔다. 이에 군중과 주재소로 몰려가 앞뜰에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시위 군중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자, 분노한 군중과 함께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고 내부로 들어가 서류를 파기하였다. 또한 주재소 내에 비치된 총·대검·탄환 등의 무기류와 의류 등을 가지고 나와 우물에 버렸다. 그 사이 경찰 2명이 도망가자 일본인 경찰 한 명을 붙잡아 구타하였고, 경찰 사택을 습격 파괴하였다. 오후 5시경에는 임동면사무소로 몰려가 유리창과 게시판 등 건물을 파괴하였으며, 내부로 들어가 가구 및 비품, 서류 등을 파기하였다. 이튿날 새벽 3시까지 만세 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였다. 22일 오전 5시경 안동면에서 경찰부장과 일본군 수비병 하사 이하 8명이 급파되었으나, 시위대는 모두 철수한 후였다. 다음 날인 22일에는 거주지인 임북면 사월리에서 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권영석(權寧奭)·권오규(權五奎)·금명석(琴明石)·천치락(千致洛) 등과 함께 마을 주민 300여 명을 규합하고, 오후 2시경 임북면사무소 앞으로 몰려갔다. 시위 군중의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 시위를 전개한 후 전날과 마찬가지로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비품 및 서류들을 모두 파기하였다. 이어서 숙직실 건물 2채도 완전히 파괴하여, 기둥과 지붕만 겨우 남았다. 시위는 오후 5시까지 이어졌고, 이후 자진 해산하였다. 이어서 주동자 검거에 나선 군경에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건조물 손괴, 가택침입, 상해,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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