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學用
洪學用1883. 11. 15 ~ 1944. 10.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1919년 영덕군 창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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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7) 1883년 11월 15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창수면 창수동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창수동의 만세운동은 전날인 3월 18일 영해면(寧海面)에서 전개되었던 성내시장 만세시위에 영향을 받았다. 영해면에서는 약 2,0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의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영덕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권태원(權泰源)·정규하(丁奎河) 등의 지휘하에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시장 부근을 행진하였고, 주재소를 공격하거나 공립보통학교·면사무소 등의 관공서로 행진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기물과 각종 공문서를 훼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영해면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이에 합류하기 위하여 3월 19일 이종구(李鐘龜)를 비롯한 창수면 오촌동(梧村洞)·삼계동(三溪洞) 주민들이 영해면으로 이동하였다. 이들이 영해면으로 가던 도중 신기동(新基洞)에서 주민들과 협의한 결과, 영해면으로 가는 것은 이미 늦었으니 창수면에서 독자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신기동 주민 다수가 참여하면서 2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창수동에 위치한 창수주재소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이때 만세시위 계획에 찬성하고 적극 동참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창수주재소로 이동하면서 손에 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도끼나 곤봉 등의 무기를 휴대하거나 돌을 던지는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를 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내부의 기물을 파손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선봉에 서서 주재소 내부로 들어가 건물을 파괴하고 각종 기물 등을 부수며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 해산 이후 귀가하였으나, 결국 일제 경찰의 검속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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