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永基
崔永基187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1919년 송화군 송화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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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상리면(上里面) 화천리(華川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50세로, 1870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3월 12일 송화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황해도 송화군(松禾郡)은 신천군(信川郡)과 안악군(安岳郡)의 천도교구로부터 만세운동 발발 및 독립만세시위의 전국적 확산 계획을 전달받았다. 먼저 3월 2일 신천군 천도교구장 최흥숙(崔興淑)은 김재선(金在先)과 우동익(禹東翼)을 송화군 천도교구장 손두순(孫斗淳)에게 보냈다. 김재선은 손두순에게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사실과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 소식을 전달하였다. 3월 5일을 전후로 손두순은 송화군의 백규하(白奎夏)·최윤조(崔允祚) 등에게 만국강화회의에서 내세운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해서 조선의 독립이 가능하며, 3월 1일 서울의 만세시위를 천도교주 손병희(孫秉熙)가 주도한 사실을 전달하였다. 손두순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송화군의 천도교인들은 만세운동 발발 및 만세시위의 전국적 확산 소식을 마을에 전파하였다. 그런데 3월 10~12일 송화헌병분대는 만세운동을 전파한 죄목으로 손두순·정태건(鄭泰鍵)·우동익 등을 붙잡았다. 그런 와중에 3월 12일 송화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는 송화면을 비롯해서 상리면(上里面)과 진풍면(眞風面)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만국강화회의에서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 따라서 조선도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송화군 내 사람들의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송화면의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시위대의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오전 10시경 장병국(張炳國)·손응규(孫應奎)·조종목(趙鍾穆)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며 송화헌병분대로 향하였다. 그리고 시위대와 함께 헌병분대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저항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해서 총격을 가하며 무력을 행사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시위대 일부가 중상을 입었다. 이때 만세시위 참여 혐의로 일제 헌병대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한국은 독립할 능력이 있음을 세계가 공인하였기에 일본은 국제공법에 의거해서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독립만세시위 관련자 전원을 무죄로 판결할 것’을 주장하면서 상고하였만, 그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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