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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榮九

崔榮九

1901. 1. 22 ~ 1959.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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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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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구(楊口)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양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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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양구군 양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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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1년 1월 22일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양구면(楊口面) 송청리(松靑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암회(崔岩回)이다. 천도교인이며, 1919년 4월 3일 양구읍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날 만세시위는 양구군의 천도교인이 주축이 되어 계획하고 전개된 만세시위였다. 처음 계획한 인물은 양구면 용호리(龍湖里)에 사는 정승원(鄭承源)과 죽곡리(竹谷里)의 최우명(崔遇明), 함춘리(含春里)의 김병하(金炳夏) 세 사람이었다. 정승원 등 주도자들은 3월 30일 천도교구실에서 만나 양구군에서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하고 4월 5일에 의거를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 이후 정승원으로부터 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양구군의 천도교인들에게 전할 것을 부탁받았다. 정승원의 권유에 만세운동에 동참하여 마을의 천도교인들을 찾아다니며 시위 계획을 알리며 참여를 촉구하였다. 또한 만세시위에 쓸 태극기를 직접 만들며 만세시위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주도자들은 논의 끝에 거사일을 4월 5일에서 2일로 앞당겼다. 또다시 변경된 날짜를 천도교인들에게 전하는 임무를 띠고 마을의 천도교인들을 찾아가 변경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2일 거사 당일 아침, 지난밤부터 내린 눈으로 시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주도자들은 부득이 거사일을 다음날로 늦추기로 하였다. 4월 3일 아침, 죽곡리에 있는 최우명의 집으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주도자들을 포함하여 동면(東面) 팔랑리(八郞里)의 장호면(張鎬眠)·장흥도(張興道)·김창헌(金昌憲), 양구면 동수리(東水里)의 최기호(崔寄浩), 용호리(龍湖里)의 박의순(朴義淳) 등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직접 만든 태극기를 앞세우고 죽곡리를 지나 읍내로 향하였다. 읍내 군청 앞에 이른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급파되면서 만세운동을 무력으로 저지하였고 만세운동 참여자 17명과 함께 모두 현장에서 붙잡히고 태극기도 몰수당하였다.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6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수감 중 1920년 4월 28일 영친왕(英親王)의 결혼을 기념한 특면사면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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