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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甲錫

諸甲錫

1892. 4. 12 ~ 1919.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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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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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晋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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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진주군 문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2년 4월 12일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문산면(文山面) 삼곡리(三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5일 진주군 문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진주군에서는 9차례의 만세시위와 6차례의 시위 계획이 있었다. 군내 최초 만세시위는 3월 18일 읍내에서 전개되었다. 이 만세시위는 3월 21일까지 계속되었고, 수천 명이 참여하는 등 대규모로 거행되어 진주 만세운동의 절정을 이루었다. 강찬영(姜贊永) 등 지역 인사들과 함께 주도한 문산면 만세시위도 그 연속선상에서 일어났다. 일제가 만든 호적법에도 철저히 반대할 정도로 강한 반일의식과 투철한 민족주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의분을 참지 못하고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같은 마을 인사들과 함께 문산면 장날인 3월 25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만세시위 도구로 사용할 태극기 제작, 참가 권유문 작성, 군중 동원을 위한 연락책 등의 역할을 분담하였다. 이때 군중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권유문을 가지고 인근 유지들과 농민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만세시위에 참가해 줄 것을 요청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3월 25일 문산면 장터로 나갔고, 군중이 모인 상황에서 강찬영 등 시위 주도층과 함께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시위대 규모는 일제 경찰 추산 400여 명이었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시위대를 지휘하여 경찰관주재소로 나아갔다. 평화적 시위였음에도 일제 경찰들이 주재소 앞에 도착한 시위대에 총검을 휘두르며 진압을 시작하였다. 이때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있다가 진압하던 일제 경찰에게 돌진하여 총을 탈취해 던져버렸다. 이후 진압과정에서 붙잡혀 진주경찰서에서 시위 주도자로 혹독한 고문과 조사를 받았다. 이후 풀려났으나, 후유증으로 병석에 있다가 회복하지 못하고 6월 1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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