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致彦
丁致彦1901. 6. 5 ~ 1930. 2.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무안군 외읍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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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901년 6월 5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외읍면(外邑面, 현 무안읍) 성동리(城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무안공립보통학교에 다니면서 3월 20일 외읍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무안군 외읍면 만세시위는 청년 유지 정순홍(丁淳紅)·김순기(金順淇)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동지 10여 명과 함께 3월 19일 외읍면에 위치한 김순기의 집에 모여,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외읍면도 빠질 수 없다”고 하면서, 다음날인 3월 20일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종이로 태극기와 친일 분자들에 대한 경고와 궐기를 촉구하는 경고문 수십 장을 각각 제작하였다. 3월 20일 주도자들은 새벽부터 외읍면 곳곳을 돌아다니며 경고문을 배포하였고, 오전 11시경 남산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며 시내를 향해 행진하였다. 오후 1시경 2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는 무안공립보통학교 앞까지 진출하였다. 이때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합류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무안공립보통학교 앞에서 일제 경찰들과 대치하다가 다시 무안 읍내를 돌며 만세시위를 펼쳤고, 오후 2시경 시위대는 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목포(木浦)에서 일제 경찰의 지원병력이 도착하였지만, 시위대가 규모가 커서 강제로 해산하지 못하였다. 다시 시위대와 함께 외읍면 일대를 행진하며 밤 10시 이후까지 만세를 부르다가 해산하였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이어진 일제 경찰의 주도자 색출 과정에서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고, 항소를 포기하여 그대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또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무안공립보통학교에서도 퇴학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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