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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順安

咸順安

188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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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咸順安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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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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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정용대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신지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없다. 판결문에는 1909년 당시 나이가 29세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885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에는 경성부 동문 밖 뚝섬에 거주하였다. 1909년 정용대(鄭容大)가 이끄는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정용대는 대한제국 군대에서 정교로 근무하다가, 해산군인들을 모아서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경기도 적성(積城)·풍덕(豊德)·김포(金浦)·통진(通津)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정확한 시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정용대 의병부대에 들어간 후 함께 활동하였다. 1909년 (음)2월 27일 최덕필(崔德必) 등 수명의 동료들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풍덕군 북면(北面) 남촌리(南村里)에 살고 있는 이장 강신규(姜信奎)의 집을 방문하고, 같은 마을의 김덕인(金德仁)에게 벼를 판매해 돈을 마련하라는 내용을 전달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음)3월 23일 밤 총기를 휴대한 박성안(朴聖安) 등과 함께 김덕인의 집을 방문하여 군자금 모금에 협조할 것을 부탁하였다. 하지만 김덕인으로부터 이러한 요구를 거절당하자, 벼 보관창고에 불을 질러 창고와 벼 5섬을 불태웠다. 이러한 활동을 지속하다가 붙잡혀 일제 헌병분견소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9년 10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방화죄와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다가 1912년 9월 13일 징역 3월 6월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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