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鳳鶴
崔鳳鶴188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장헌문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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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7) 경상북도 장기군(長鬐郡) 내남면(內南面) 권리동(權里洞, 현 경주시 문무대왕면 권이리)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8년 당시 27세이므로 1882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장헌문(蔣憲文) 의병부대에서 군수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는 등 내정 간섭을 본격화하였고, 1907년 한일신협약을 강제 체결하여 통감정치를 강화하였다. 같은 해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고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로 해산당하자 전국에서 다시 의병항쟁이 전개되었고, 해산군인들도 이에 동참하게 되었다. 경북 영일(迎日) 출신으로 1896년부터 의병활동을 시작한 장헌문은 1905년 김재홍(金載洪)·김복선(金福善) 등과 함께 의병부대를 조직한 후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장헌문은 의병부대를 이끌고 영일을 중심으로 경주(慶州)·흥해(興海)·청하(淸河)·기장(機張)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제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1908년 (음)2월 경부터 (음)4월 경까지 장헌문 의병부대에서 김재홍(金載洪)·김복선(金福善)·정만춘(鄭萬春)·이태이(李太伊)·이무범(李武範)·최용이(崔用伊)·장치일(張致一) 등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장기·경주 일대에서 화기·음식물·짚신 등을 군수품으로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붙잡혀 대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8년 10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 살인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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