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福吉
崔福吉1894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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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8)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풍산면(豊山面) 제일리(第一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1년 당시 28세이므로 1894년생으로 추정된다. 기독교인으로 뜻을 같은 사람들과 모여 민족의 장래에 관하여 고민하면서 독립을 위한 방략을 모색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설되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하였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윤찬복(尹燦福)·김경신(金敬信)·김화자(金花子)·옥순영(玉淳永) 등과 모여서 방법을 의논하였다. 같은 해 (음)8월 윤찬복이 기독교 계통의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총무 박승명(朴承明)으로부터 독립운동을 지원할 향촌 조직을 결성할 것을 권유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해 (음)10월에 순천군 제현면(濟賢面) 문창리(文昌里) 예수교 학교에서 모여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婦人鄕村會)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였다. 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평양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부인향촌회는 대한국민회 산하의 부인조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면서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조직의 주 임무였다. 향촌회의 임원진은 모두 교회 중진들로 구성되었다. 윤찬복이 회장으로 선임되었으며 정찬성(鄭燦成)과 함께 회계 업무를 맡아 수행하였다. 그리고 회원 모집에 힘쓴 결과 여신도 가운데 많은 수가 향촌부인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활동에 동참하였다. 특히 이들은 회원에게서 4원씩의 회비를 징수해 자금을 모집한 후, 단체 운영을 위한 비용 1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모두 독립운동 지원 자금으로 비축하였다. 1920년 (음)3월 23일 마침내 그동안 모은 160원을 임시정부 요원인 차경신(車敬信)에게 전달하였다. 이 일로 1921년 1월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윤찬복·정찬성과 더불어 기소되었다. 같은 해 7월 2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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