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秉壽
崔秉壽1906. 11. 5 ~ 1965. 2.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사상연구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관련 사건
- · 영암농민 데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8) 1906년 11월 5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덕진면(德津面) 영보리(永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병희(崔秉熙)이다. 농업과 행상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932년 영암농민 데모 사건을 주도하였다. 1931년 지역의 청년들과 모여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비밀결사 신사상연구회(新思想硏究會)를 조직하고,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독립의식을 고취함과 더불어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또한 지역 내 소년회의 조직 활동을 지원하고 소년회원들과 함께 모여 민족문제와 사회주의 사상에 관하여 토론하는 등 독립정신을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그러면서 한국인도 일치단결하여 지역 곳곳에 농민조합과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농촌을 개혁함으로써 하루라도 빨리 일제로부터 한국을 독립시킨 뒤 러시아처럼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농촌 계몽을 위해 노력하였다. 1932년 3월 7일 최석호(崔碩鎬)·최동림(崔東林)·최동환(崔東煥)과 함께 영보리의 야학회관에서 「아내의 후회」라는 제목의 신파극을 연극함으로써 참석자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였다. 같은 해 6월 2일에는 학산면 용산리에 거주하는 이건우의 자택에서 제1회 월례회를 개최하고 연구회의 발전을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였다. 또한 노동절을 기념하기 위한 시위를 6월 4일에 전개하기로 기획하고, 운암리·영보리·노송리·장암리 청년회원 약 70명과 함께 영보리의 영보정(永保亭) 뒷산에서 백계리(栢溪里) 방면에서 발생한 소작문제의 대응 방법에 관하여 논의하였다. 청년들과 함께 지주들이 마음대로 소작권을 이동시키지 못하도록 단체 행동을 실행하기로 결의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적기(赤旗)를 앞세우고 운암리 방면을 향해 행진하면서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노동가를 불렀다. 이때 시위대의 선봉에 서서 사람들이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지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는 도중 경작권을 빼앗은 새로운 소작인의 집으로 들어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와 자본가 세력의 주구(走狗) 노릇을 하는 민족 반역행위를 꾸짖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일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24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고, 1934년 3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받고 다음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