蔡東八
蔡東八1902. 5. 2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1919년 영암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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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902년 5월 26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작천면(鵲川面) 내기리(內基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채동팔(蔡同八)이다. 1919년 당시에는 영암군(靈岩郡) 영암면(靈岩面) 교동리(校洞里)에 거주하며 영암보통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조극환(曺克煥)·김민규(金敏奎) 등과 함께 1919년 4월 10일 영암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영암시장 만세시위는 영암보통학교의 전직 교사였던 조극환의 주도로 계획되었다.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은 조극환은 3월 25일 자신의 집에서 영암보통학교 학생 김민규(金敏奎)를 만나 전국적으로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 전개되고 있는 시국 상황을 논의하면서 영암에서도 만세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에 김민규가 찬성 의사를 표하였고, 조극환은 김민규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동지들을 영암보통학교에서 규합하도록 하는 한편 자택에서 태극기 300장 정도를 제작하였다. 영암보통학교의 교정에서 김민규에게 영암의 만세운동 계획을 전달받고, 4월 8일 김봉근(金奉根)을 비롯해 이지봉(李枝奉)·김봉근(金奉根)·유인봉(柳寅奉)·이종구(李鍾謳)·나효균(羅孝均)·천병권(千秉權)·진봉재(陣奉才) 등의 같은 영암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에 모여 나라의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의 취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여 만세운동의 동지로 결합하였다. 이에 이들과 함께 김민규와 연락하여 4월 10일의 영암시장 만세시위에 함께 할 의사를 전달하고, 즉각적으로 만세시위의 준비에 착수하여 태극기 100장과 대형 깃발 1개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만세운동의 거사일인 10일 새벽 한국인 교사의 갑작스러운 기숙사 검사에 의해 그동안 준비했던 태극기를 모두 압수당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김민규·김영언(金永彦) 등은 이날 정오로 예정된 만세시위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여 조극환과 의논 끝에 시간을 앞당겨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낙담한 상태로 등교 중에 김민규로부터 시간을 앞당겨 즉시 만세시위를 시작한다는 내용을 전달받고, 김봉근·유인봉·이종구 등과 함께 곧바로 영암시장으로 가서 조극환이 제작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등을 받아 주민에게 배포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영암시장에서 학생들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곧바로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강제로 만세시위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조극환·김민규·김영언 등 30여 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붙잡혀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서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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