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允興
鄭允興1890. 4. 8 ~ 1950. 3.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7)
관련 사건
- · 1919년 아산군 신창면(新昌面)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7) 1890년 4월 8일 충청남도 아산군(牙山郡) 신창면(新昌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덕균(李悳均)·박태화(朴泰和) 등과 함께 1919년 4월 2일 아산군 신창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아산 지역의 만세운동은 학생 주도의 초기 만세시위가 있고나서 1919년 3월 하순부터 각 지역에서 지역 인사들 중심의 횃불만세시위가 번져 나갔다. 이덕균·박태화 등 동지들과 논의하여 4월 2일 신창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오후 8시경 이덕균 등 동지들과 함께 읍내리와 오목리(五木里)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하여 만세시위 참여를 결의한 200여 명을 규합하여 인근의 학성산(鶴城山)으로 올라갔다. 산 정상에 횃불을 밝히고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한동안 산 위에서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후, 이덕균이 갑자기 “신창면사무소로, 주재소로 갑시다. 이제부터 일제 관청을 쳐부숩시다!”라고 외쳤다. 그동안 만세시위로 기세가 한껏 오른 주민들은 이덕균의 제안에서 곧바로 찬동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돌멩이를 주워들고 산 아래로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덕균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신창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다른 주도인물들과 함께 솔선하여 면사무소를 향해 투석하며 장지문 2짝을 부수는 등 면사무소에 대한 습격을 주도하였다. 이후 시위대를 지휘해서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문등(門燈)의 유리 등을 파괴하고, 공립보통학교로 행진하였다. 학교장이 나와 만세시위를 제지함에 분노하여 시위대와 함께 보통학교를 향해 격렬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공립학교 유리창 270여 장과 문 4짝을 파손시켰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신창면으로 출동한 일제 헌병대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가 스스로 취하하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