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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秉善

崔秉善

1887. 1. 6 ~ 194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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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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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정주(定州)중국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정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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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병인의용대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1887년 1월 6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정주면(定州面) 성내동(城內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최병선(崔炳善)을 썼다. 1919년 만세운동 참가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를 창설한 후, 일제 밀정과 친일파를 저격하는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고향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은 후, 1920년 1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1925년 11월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경무국장 나창헌(羅昌憲)·이유필(李裕弼)·박창세(朴昌世) 등과 함께 병인의용대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임시정부의 권위와 정신을 옹호하며 일제의 모든 시설을 파괴하고 일제 밀정으로 활동하는 한인들을 저격하여 그 세력을 약화시켜 한국의 독립을 앞당기려는 목적하에 대원들을 이끌고 일제 밀정과 친일파를 저격하는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12월 20일 상하이 공동조계 영인전차공사(英人電車公司) 기관사로 위장하여 상하이 일본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1926년 2월에는 동지 3명과 함께 밀정 박제건(朴濟乾)과 중국 경찰을 처단하였다, 당시 현장에서 우측 어깨에 총탄을 맞아 공무국병원(工務局病院)에 입원해 치료받다가 붙잡혀 동료 장영환(張永煥)과 함께 일본영사관으로 인계되었다. 일본영사관 유치장에 있을 때 의용대 동지들이 구하고자 폭탄을 터트리기도 하였지만 무위로 돌아갔고, 같은 해 6월 10일 순종 인산일(因山日)을 기회로 국내에서 폭탄으로 주요 인사를 저격하려 한 계획까지 발각되었다. 1926년 4월 30일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다시 압송되었고, 1927년 3월 24일 나가사키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살인강도 및 폭발물 취체 벌칙 위반’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11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다시 무기징역을 받았다. 이후 나가사키형무소로 이송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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