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一平
陳一平1913 ~ 1939. 4
관련 단체
- · 혁명동지회
- · 조선의용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1)
관련 사건
- · 중일전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1)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자료에 따르면 1913년생으로 추정된다. 혁명동지회(革命同志會, 일명 10월회) 결성을 주도하였고,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과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였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난징(南京)에 있는 중앙대학(中央大學)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깊게 공감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1935년 김학무(金學武)·이성황(李成煌)·정성언(鄭成彦) 등과 함께 사회주의 비밀결사단체였던 혁명동지회의 결성을 주도하였다. 1935년 4월 1일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 3기생으로 입교하였다.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는 김원봉(金元鳳)이 장제스(蔣介石)의 지원을 받아 난징에서 설립한 학교로, 정식명칭은 ‘중국국민정부 군사위원회 간부훈련반 제6대’였다. 1932년부터 1935년까지 총 3기에 걸쳐 12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한국의 절대독립, 만주국 탈환 등을 설립목표로 내세웠다. 3기생들이 훈련을 받던 장소는 난징 외곽 상방진(上方鎭) 황룡산(黃龍山) 소재 천녕사(天寧寺)였다.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한 이후 정치·군사·실습에 관한 과목, 한국역사, 한글, 만주지리 등의 과목을 학습하였다. 이 중 가장 비중이 높았던 과목은 일제 관공서 파괴, 기습, 유격전 등 특무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1935년 7월 중순 3기생들과 함께 민족혁명당에 가입하여 당원이 되었다. 민족혁명당은 1935년 7월 5일 난징에서 한국독립당, 의열단, 신한독립당(新韓獨立黨), 조선혁명당, 미주대한인독립당(美洲大韓人獨立黨)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항일독립운동 단체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김구(金九)·김원봉·유자명(柳子明) 등은 중국 국민당정부와 협의하여 한중연합전선을 강화할 것을 결정하였다. 민족혁명당을 이끌었던 김원봉은 민족혁명당 당원들에게 중일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당부하였다. 한인비행사 20여 명을 뤄양(洛陽)에 집결시켰고, 군관학교 출신 청년당원들을 중일전쟁 전선에 파견하였다. 1937년 9월 국민당 간부였던 캉저(康澤)와 협의하여 민족혁명당 소속 청년당원들을 장시성(江西省) 싱쯔현(星子縣)에 있던 중앙육군군관학교 특별훈련반에 입교시키기로 결정하였다. 1937년 12월 1일 민족혁명당 당원 84명이 중앙육군군관학교 특별훈련반에 입학하였다. 12월 12일 난징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1938년 1월 6일 후베이성(湖北省) 장링현(江陵縣)으로 이동하여 훈련이 진행되었다. 입교생들은 1938년 3월 1일부터 제1대대 4중대에 속하게 되었다. 졸업을 앞둔 1938년 5월 19일 장링에서 3일간 진행된 민족혁명당 제3차 임시전당대표대회에 참여하였다. 임시전당대표대회가 열리기 2일 전, 김원봉을 비롯한 민족혁명당 간부들은 중앙군관학교를 방문하여 입교생들에게 졸업일자가 5월 24일로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19일에 개최되는 임시전당대표회의에서 졸업 후 진행할 활동 방침과 당의 통일문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때 입교생들의 의견을 수합하고 개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왕통(王通)·이경산(李景山)·김세일(金世日)·석성재(石成才)·김학무(金學武)·이익성(李益星)·김창만(金昌滿)·마춘식(馬春植)·임평(林平) 등과 함께 입교생 대표로 선출되었다. 졸업생들은 토의를 거쳐 ‘만주진출 및 동북항일의용군과의 연합’, ‘점진적인 당의 단결강화’를 다수결로 결정하였다. 1938년 5월 24일, 약 6개월간 진행된 교육을 마치고 중앙육군군관학교 특별훈련반을 졸업하였다. 1938년 6월 졸업생들과 함께 우한(武漢)으로 이동하였다. 일본군의 중국침략이 더욱 거세지자 1938년 10월 김원봉의 주도하에 조선의용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때 조선의용대 대본부 정치조(政治組) 소속 조원이 되어 윤세주·김석락(金錫洛)·한지성(韓志成)과 함께 활동하였다. 일제 침략으로 무한이 함락되자, 1938년 11월 말 조선의용대 대본부는 구이린(桂林)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김원봉·신악·김성숙·이집중·이형래·조세민·이춘암·석성재·김인철·한지성·윤세주·김석락 등과 함께 구이린으로 들어왔다. 이후에도 조선의용대 대본부 정치조의 임무였던 훈련, 선전, 자료수집과 보관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39년 1월 6일 조선의용대 대본부에서 전선으로 파견하였다. 전선과의 연락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작전지역에서 활발한 항일활동을 벌이다 1939년 4월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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