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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惠淳

崔惠淳

1900. 9. 2 ~ 1976. 1. 16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崔惠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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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애국부인회
  • ·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900년 9월 2일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태어났다. 간호사 출신이다. 남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철(金澈)이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상하이에서 애국부인회와 상하이한인각단체연합회(上海韓人各團體聯合會)에서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였다. 1931년 10월 21일 임시정부에서 만주사변과 만보산사건 이후 선전공작 및 한중합작 반일운동 강화 등의 대책을 협의하기 위하여 상하이에 있는 조선인각단체대표회의(朝鮮人各團體代表會議)를 소집하자 임시정부의 지지와 후원을 받으며 결성된 애국부인회의 대표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이 회의에서 주석 박세창(朴昌世)의 주재 하에 중국을 후원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여 한국 독립을 촉진하기 위해 상하이한인각단체연합회를 결성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회계 책임자로 선임되었다. 1931년 12월 제23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박진(朴震)·김정식(金靖植) 등과 함께 전라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1933년 2월까지 활동하였다. 같은 해 상하이 한인애국부인회의 집사장(執事長)으로서 3·1운동 기념일 등에 관한 인쇄물을 작성하고 배포하는 등 독립운동 후원 활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상하이에서 조산병원을 경영하며 1936년 3월 서판암(徐判岩)을 자택에 체류하게 하고, 안공근(安恭根)·김구(金九) 등과 연락하여 남경군관학교 입교를 주선하였다. 1934년 남편 김철이 상하이에서 병사하자 1937년 4월 어린 자녀 3명을 데리고 고향 광주로 돌아왔다. 같은 해 8월 광주경찰서에 붙잡혀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광주 검사국에 송치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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