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崔聖1891 ~ 1920. 2.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동지회
- · 상해한인민단
- · 임시의정원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동지회관련 보안법위반사건으로 검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성면(古城面) 연상동(煙上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1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최성순(崔聖橁)을 썼다. 1919년 의주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동지회(同志會)라는 단체를 조직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의주군 내 의주성(義州城) 안에서 기독교인과 학생 700~800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의주에서 동지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기획하다가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이를 피해 펑톈(奉天)·톈진(天津) 등을 경유하여 1919년 4월 하순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상하이 영국조계와 프랑스조계 미인리(美仁里)에 기숙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 고일성(高一聲)·고진구(高辰具)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9월경까지 상해한인민단(上海韓人民團) 서무부장(庶務部長)으로 2개월간 근무하면서 상하이 한인의 민족의식 고취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해한인민단은 임시정부의 기초 조직으로써, 1918년 가을 무렵 출범한 상하이 고려교민친목회가 1919년 9월 임시정부 수립 후 산하 조직으로 편입되면서 개칭된 것이다. 이 시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비서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19년 10월 9일 임시정부로부터 애국금(愛國金) 수합과 중대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부여받고 안둥현(安東縣, 현 단둥)을 거쳐 국내로 잠입하던 중 고향의 학우인 안둥경찰서(安東警察署) 순보(巡補) 김홍식(金鴻植)을 만나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10월 16일 동지를 규합하여 안둥과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계획하던 중, 이를 수상히 여긴 안둥경찰서의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0월 23일 의주경찰서로 옮겨졌으며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겪다 1920년 2월 10일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강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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