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枋衍
崔枋衍1886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임시정부
- · 연통제
- · 함경북도독판부
- · 국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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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함경북도 회령군(會寧群) 팔을면(八乙面) 금생동(金生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6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최방훈(崔枋熏·崔枋勳)이고, 한자를 달리한 최방연(崔方衍)을 쓰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시를 받아 회령지역에서 동지들과 함께 붕괴된 연통제(聯通制)를 개정하였다. 그리고 함경북도독판부의 설치를 모의하고, 그 임원으로서 독립운동자금 모집과 무기 수집 등의 활동에 진력하였다. 1920년 5월 임시정부에서 내무부 특파원 안정근(安定根)·왕덕삼(王德三)을 간도와 함북으로 파견하여 회령에 함경북도독판부를 재건하고, 일제에 의해 파괴된 임시 연통제 기관을 회령을 중심으로 개정하도록 하였다. 그해 8월에는 국민회(國民會) 통신부장 박용훈(朴龍勳)의 집에서 조선 독립을 지지하는 동지들과 함께 독판부 설립을 모의하였다. 같은 해 9월 29일 함경북도독판부 경감(警監)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전경욱(全慶郁) 등이 다시 간도 국민회 본부로 건너가 안정근을 만나 함경북도독판부 조직과 활동 계획에 관해 협의하고 돌아와 권총 1자루·탄환 7발·폭탄을 전달하자 이를 자택에 보관하였다. 오익렬(吳益烈)의 집에서 조선 독립을 위한 군자금을 임시정부 공채증서 매각 등의 방법으로 모집하여 전경욱에게 전달하였다. 최환순(崔煥順)에게는 김재익(金在益)의 집에서 조선 독립에 관한 문서 등을 수령하여 오도록 지시하였고, 동지들과 함께 간도에 있는 조선인 단체와 연락하여 회령지역 관청과 은행 등 일제 주요 기관 파괴와 친일파 순사 저격 등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1920년 12월 회령경찰서와 함경북도 경찰부에 붙잡혔다. 1921년 11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상해임시정부의 지시에 따라 독판부 및 지회 설치 협의, 문서 상호교부, 무기 보관 운동자금 모집 등을 통해 독립운동을 실행하였다’는 이유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폭발물취체규칙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다시 항소하였으나, 1922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 산입)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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