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枋得
崔枋得1900. 2. 10 ~ 1944. 8.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회령지회
- · 연통제 함북독판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함북독판부사건
- · 회령폭탄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1900년 2월 10일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팔을면(八乙面) 금생동(金生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봉송(崔鳳松)이다. 창효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회령지회를 조직하고, 연통제(聯通制) 함북독판부(咸北督辦部) 장서(掌書)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대한국민회는 1919년 3월 말경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에서 한인자치와 독립군 양성 등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연통제는 1919년 7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령 제1호로 임시연통제가 공포되면서 운영되었다. 임시연통제에 의하면 연통부는 각 도에 감독부(監督府), 각 부(府)·군(郡)에 총감부(總監府), 각 면(面)에 사감부(司監府)를 설치하고, 임시정부 공문 전파, 독립시위운동 진행 상황, 군인과 군수품 모집 등을 목적으로 하였다. 1920년 (음)5~6월 무렵 정희용(鄭熙鎔)·나성호(羅聖鎬)·오순준(吳舜濬) 등과 함께 회령군 팔을면 금생동에서 대한국민회 회령지회를 조직하였다. 그해 7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함북독판부가 설치될 때, 장서로 임명되어 친일파 처단과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1년 11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2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3년 5월 27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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