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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何然

韓何然

1903. 12. 18 ~ 1960.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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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韓何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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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부산(釜山)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부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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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본능아연맹
  • · 흑우연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본능아연맹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3년 12월 18일 경상남도 부산(釜山) 초량(草梁)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하현(韓河鉉), 한하원(韓河源), 소룡선(小龍善)을 사용했다. 13세 되던 해에 부모를 따라 함경남도 원산(元山)으로 이주하였다. 16세 때 강원도 양양(襄陽)에서 화전민 생활을 하다가 금강산에 들어가 불경을 익혔으며 원산불교포교당에서 철학과 문학을 수학하였다. 1924년부터 이향(李鄕)·조시원(趙時元)·유우석(柳禹錫) 등 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아나키즘을 연구하다가 1926년 무렵 본능아연맹(本能兒聯盟)을 결성하였다. 어떠한 외부의 압력도 없이 ‘본능과 자아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의 이 단체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 단체는 대중적인 청년단체인 원산청년회를 중심으로 사상계몽운동을 펼쳤다. 1927년 4월 공산주의계열 단체와의 쟁투로 인해 쌍방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유우석과 더불어 중상을 입고 이른바 상해치사죄로 구속되어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그러던 중 1928년 7월 고등법원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무죄로 풀려났다. 그후 원산에서 강제 추방당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으로 건너간 후 1928년 일본 도쿄(東京)의 재일 한인아나키스트 단체인 흑우연맹(黑友聯盟)에 가입하였다. 회원들이 많이 사는 기숙사인 계림장(鷄林莊)에 거주하면서 원심창(元心昌)·정태성(鄭泰成) 등과 함께 기관지 『호조운동(互助運動)』 발행에 참여하였다. 또한 친일 융화단체인 상애회(相愛會)가 재일 한인들에게 폭력을 일삼으며 갈취를 일삼자, 이를 제지하다가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상애회 깡패들이 일제 경찰의 후원 아래 무장을 한 채 계림장을 습격하자, 검술을 배운 바 있던 실력으로 퇴치하였다. 이 일로 경찰에 붙잡혔지만 정당방위가 입증되어 무죄 방면되었고, 오히려 경찰과 상애회의 야합사실이 폭로되어 재일한인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후 1928년 8월 친일단체인 대동협회(大同協會)와도 쟁투를 벌여 수차 붙잡히기도 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의 강제 추방명령으로 1929년 12월 일시 귀국하여 마산에 머물면서 김산(金山) 목사와 함께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재차 도쿄로 밀항하였고, 1932년 홍성환(洪性煥) 등과 함께 자유코뮨사를 설립해 『자유코뮨』과 『흑색신문』을 발간하였다. 1933년경 최복선(崔福善) 등과 함께 자유청년연맹(自由靑年聯盟)을 조직하였다. 이후에도 상애회와 조선유학생학우회 등과 쟁투를 벌였고 메이데이 투쟁, 1923년 관동대지진 희생자 추도회 등에 참가하였다. 1933년 주중 일본공사인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를 처단하려던 백정기(白貞基)·원심창·이강훈(李康勳) 등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붙잡혀 일본으로 압송되어오자, 백정기 등에 대한 진상 규명과 지원 활동을 벌였다. 또 자유코뮨사의 홍성환을 나가사키(長崎) 형무소로 파견하여 옥중 면회하고 법정투쟁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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