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滿淑
韓滿淑1920. 12. 14 ~ 1993. 3. 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흥아연구회
- · 계림동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계림동지회(오사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0년 12월 14일 전라남도 제주(濟州) 조천면(朝天面) 조천리(朝天里) 출신이다.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유학생 생활을 하다가 조선인 유학생들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인 ‘흥아연구회(興亞硏究會)’와 ‘계림동지회(鷄林同志會)’를 설립하여 조선 독립운동을 위한 이론적·실천적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 도발 등 일본 제국주의는 전시 파시즘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후 중일전쟁 발발 초반과는 달리 중국 장개석 정부의 강한 저항으로 인해서 전황이 점차 장기화되자 조선총독부에서도 경제적·군사적 열세를 극복하고자 총동원정책을 통해 물자의 총동원과 총후 식민지 조선 사회의 재조직, 그리고 사상동원에 힘을 쏟았다. 그렇지만 명목상에 불과했던 내선일체(內鮮一體) 정책에 대한 식민지 조선인들의 불만이 보다 강해졌고 일본의 패전과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및 항일 단체들이 곳곳에서 은밀하게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일본 오사카부(大阪府)에서 1940년 3월경 니혼대학(日本大學) 부속 오사카전문학교(大阪專門學校)의 특과야간부(特科夜間部)에 재학하면서 동료 조선인 유학생인 김봉반(金奉班)·김병목(金丙穆)·고봉조(高奉朝)·강금종(姜金鍾)·부임전(夫林栓) 등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친 회합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이후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할 것을 다짐하며 김봉반의 매형이 경영하는 금성제작소(金城製作所)에서 ‘조선 청년의 나아갈 길은 오직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몸을 바치는 길이 있을 뿐’이라는 취지의 협의와 토론하였다. 이후 독서회를 운영하여 서로 수양하며 각각 그 실력의 고양에 노력하기로 하고 그 단체를 ‘흥아연구회’라고 이름짓고 조직하여 동지들 간에 맹약을 결성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모임을 거듭하여 조선독립운동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였다. 1941년 2월경 ‘국제 정세의 핍박과 국내 물자 수급문제의 복잡화’ 등의 사정을 비판하고 일본의 국력이 쇠망하여가고 있다고 판단하여 흥아연구회를 발전적으로 해산한 후 1941년 5월경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자, 여기에 합류하였다. 긴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 민족의 독립과 해방이라는 목적에 매진하기로 하고 엘리트층의 획득과 동지 간의 견고한 결합, 삼민주의(三民主義) 등 혁신 사상을 중심 과제로 연구할 것, 학교 내의 동지 획득에 매진할 것 등을 당면 과제로 내세우고 활동하였다. 이렇게 항일 비밀결사 활동을 활발히 하다가 1941년 2월 26일 일제 경찰에게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붙잡혀 모진 고문과 심문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14일 오사카지방검사국에 송치되었으나 혹독한 고문으로 인하여 정신착란증을 일으켜서 풀려났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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