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垣亨
崔垣亨1901. 3. 13 ~ 1945. 2.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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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901년 3월 13일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곤양면(昆陽面) 맥사리(脈社里)에서 태어났다. 동향 출신 독립운동가 최범술(崔凡述)의 조카이다. 보통학교 졸업 후 서울로 유학해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1919년 4학년 재학 중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참여해 시위를 이끌었다. 당시 경남 합천군 소재 해인사(海印寺)에서 승려 생활 중이던 최범술에게 독립선언서를 우송하여, 경남지역 만세운동 전개와 확산에 기여하였다. 이후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경성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한동안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다녔다. 그러던 중 ‘「조선독립의 당위성」 등을 국제여론화하여 민족자결 원칙이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것을 강력히 추진할’ 뜻을 품고, 이를 이루기 위해 먼저 ‘자신의 실력을 기르고 지식을 체계화할 필요’에서 일본 유학을 결심하였다. 아오야마학원(青山學院) 중학부에 진학한 이후 도쿄(東京)로 가 학업을 계속하는 한편, ‘각국 공관의 대사들과 교류’하며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주오대학(中央大學)에 재학 중이던 독립운동가 장재성(張在星)을 지도하여, 국내에서 계몽운동 중이던 육홍균과 연락을 취하는 등 줄곧 조국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1942년 2월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정재홍(鄭在洪)에게 5,000원의 송금을 요구한 사실이 발각되어 붙잡혔다. 같은 해 6월 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던 중 1945년 2월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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