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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興根

韓興根

1890. 2. 19 ~ 194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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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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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원산(元山)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원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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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관련 사건

  • · 강우규 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1890년 2월 19일 함경남도 원산부(元山府) 신촌동(新村洞)에서 한응구(韓應球)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호는 백암(白巖)이다. 원산의 보명학교(普明學校)를 졸업한 후, 다시 측량학교(測量學校)를 졸업하였다. 20세 되던 해 원산의 홍도학교(弘道學校) 교사로 있으면서 민족교육에 힘썼다.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당하자 이동휘의 권유로 남공선 등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였다가,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신한촌(新韓村) 한인거류민 단장 채성하(蔡成夏)와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동지 규합에 나섰다. 국내 독립운동가들과 연계 투쟁하고자 상인으로 가장하여 원산으로 잠입한 뒤 함경·강원·평안·황해 등지를 돌며 조병철(趙炳喆)·김장석(金章錫)·안돈우(安敦雨)·최자남(崔子男)·문무술(文武術)·김상익(金相翊)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독립운동 자금 조달과 일제의 주요 관공서 및 시설 파괴, 요인 처단 등을 계획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폭탄을 입수하여 원산으로 반입한 뒤 광석동(廣石洞) 인근 야산에 묻어두었다. 1919년 7월경 동지인 최자남으로부터 신임 총독을 처단하고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폭탄을 가지고 원산으로 잠입하여 최자남의 집에 머물고 있던 강우규(姜宇奎)를 소개받았다. 강우규로부터 거사 계획을 듣고 은닉하고 있던 폭탄 1개를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동참하였다. 강우규는 최자남의 소개로 알게 된 허형(許炯)과 8월 4일 서울로 출발하였다. 5일 서울 도착 후 신임 총독 부임에 관한 정보를 취득한 강우규와 허형은 8월 17~18일경 허형을 통해 최자남의 집에 숨겨놓은 폭탄 1개를 서울로 반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9월 2일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신임 총독이 남대문역(구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강우규는 남대문역에, 허형은 용산역에서 대기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8월 20일경 강우규와 만나 폭탄 1개를 인계할 방법을 논의하였다. 일단 폭탄이 준비되는 대로 강우규에게 ‘아들 도착, 속히 오라’는 암호 전보를 보내기로 하였다. 8월 28일 폭탄이 준비되자 최자남을 통해 ‘아들 도착, 속히 오라’라는 전보를 강우규에게 보냈다. 그러나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아 폭탄을 건네주지 못한 채 8월 30일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허형은 다음날인 8월 31일에야 원산에 도착하였다. 9월 2일 강우규가 의거를 결행하였다. 그 사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후 만주·러시아 등지를 오가며 항일유격대를 조직하여 일본 헌병대와 주재소 등을 습격하는 등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국내 일제 주요기관을 파괴하고자 갑산(甲山)에 잠입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자 다시 북만주와 하얼빈 등지를 다니며 항일투쟁을 도모하였다. 그러던 중 원산에 있던 가족들이 블라디보스토크로 피신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갔다가 1921년 4월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원산으로 압송되어 함흥감옥에서 3년여 동안 미결수로 있다가 고등법원에서 징역 8년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1926년 11월 6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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