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俊觀
韓俊觀1885 ~ 1944. 5.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항일구국단
- · 광복군총영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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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2)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상수구리(上水口里)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20년 당시 36세이므로 1885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한관준(韓寬俊)이다. 활동 당시에는 평양부 죽전리(竹典里)에 거주하였고, 포목상(布木商)을 하였다. 1919년 항일구국단(抗日救國團) 단원으로 활동하였고, 1920년에는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일제기관 습격 의거를 지원하였다. 1919년 5월경 여행렬(呂行烈)·이기영(李起榮)·홍석운(洪錫雲)·김예진(金禮鎭)·이춘삼(李春三)·김송혁(金松爀)·한성로(韓聖魯)·문빈(文斌) 등과 함께 항일구국단을 조직하였다. 같은 해 11월 일제 주요 기관 파괴를 위해 중국 동삼성(東三省)에서 온 표영준(表永俊)·유성삼(劉成三)으로부터 권총을 반입하였으며, 김상만(金相萬)·주석환(朱錫煥)으로부터는 폭탄을 입수하였다. 그리고 자택에 임시정부 교통지국을 설치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 이를 독립운동에 나서는 인사들에게 분배하는 역할을 맡았다. 1920년에는 광복군총영의 활동에 동참해 군자금 모집을 전개하며 최급 경고문(最急警告文)을 평양 시내에 배포하였다. 같은 해 7월경 김예진·장혜근(張惠根)·장인갑(張仁甲) 등 12명이 8월 3일 오후 9시경 3대로 나누어 평안남도 제3부·평양경찰서·평양부청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을 세우자, 이에 동조하고 폭탄 투척 인원이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였다. 이후 폭탄 투탄 의거가 시행되어 평안남도 제3부 청사 유리창과 외벽이 파손되었지만, 평양경찰서·평양부청의 폭탄 투척은 실패하였다. 그해 8월 9일에는 평안남도 제3부 소속 자동차의 저격 계획을 세운 표영준을 지원하였다. 일제 경찰에 따르면 이들을 숨겨주고 도주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음식을 제공하고 권총과 탄환을 숨겨주었다. 이 일로 관련자 22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20년 10월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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