表永俊
表永俊1896. 5. 2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의용단
포상 정보
- · 독립장(196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2) 1896년 5월 25일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삼등면(三登面) 자양리(紫陽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승환(崔昇煥·崔承煥)이다. 의용단(義勇團)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직후 주석환(朱錫煥)·여행열(呂行烈)·김상만(金相萬) 등과 서간도로 갔다. 그곳에는 대한제국 무관을 지내다 군대해산 후 의병 활동에 참여한 여행열의 부친 여순근(呂淳根)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훈련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여순근과 안둥현(安東縣)에 근거지를 둔 대한청년단연합회 총재 김승만(金承萬)을 만나 국내 독립운동의 방향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1919년 11월 돌아왔다. 귀국할 때 권총 여러 자루를 반입하였다. 1920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비밀결사인 의용단 총무 김석황(金錫璜)이 평양에 와서 기홀(記笏)병원에 신경쇠약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위장 입원하여 의용단 지단과 분단을 설립하고 단원을 가입시켰다. 이때 여행열과 의용단 단원이 되었다. 그해 7월 2일 의용단원들과 평남 대동군 추빈리의 군 직원 남응우(南應祐)의 집을 급습해 군자금 350원을 모집하여 김석황에게 전달하였고, 김석황은 이를 임시정부로 송금하였다. 단원들이 모은 군자금이 수천 원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즈음, 미국의원단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한 서간도 콴뎬현(寬甸縣)에 본부를 둔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서 4개 조의 결사대를 국내로 파견하였다. 의용단도 이들 결사대와 합동작전을 계획하고 조를 편성하였는데, 여행열과 한 조가 되어 1920년 8월 3일 밤 9시 평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고 말았다. 의거 후 여행열과 현장을 벗어나 평양 칠성문 쪽으로 가던 중, 일본인 순사 요코야마 코마지(橫山駒次)를 만났다. 두 사람은 권총을 발사해 중상을 입혔고, 8월 9일 밤에는 평안자동차상회 자동차를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8월 20일에는 평양 연광정(鍊光亭) 앞에서 평남경찰부장 자동차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거사 후 기홀병원에 은신하고 있다가 8월 22일에 붙잡혔다. 1921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평양감옥과 경성형무소에서 10여 년간 옥고를 겪다 감형되어 1930년 6월 7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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