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乃洪
崔乃洪1876 ~ 1908. 1.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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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3) 경상남도 창원(昌原)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8년 당시 33세이므로 1876년생으로 추정된다. 전라북도 금구군(金溝郡) 수유면(水流面) 원평리(院坪里)에서 사금(砂金) 채취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5~6월경 동료 이칠봉(李七峰)의 부친이 의병부대에 가담하자, 이를 계기로 이칠봉·장패관(張貝寬)과 함께 의병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전북 일대에서 무장한 동료들과 함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되고, 이어서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 해산되었다. 그러자 전국에서 의병이 다시 봉기하였고, 해산군인들도 의병에 합류하면서 항일투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1908년 1월 13일 8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전북 김제(金堤)를 공격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작전을 수행한 후 귀환하다가 원평리에서 일본군 기병대의 공격을 받고 교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칠봉의 부친과 동료 5명은 사망하였으며, 장패관이 목에 큰 부상을 당해 이칠봉과 함께 피신시켰다. 이후 잔여 의병 10여 명과 은신하며 재기를 도모하였지만 결국 금구에 파견된 타니가와(谷川篤次) 순사에게 이칠봉·장패관과 함께 붙잡혔다. 주재소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지만 완강히 저항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 1월 29일 오후 6시 이칠봉·장패관과 함께 탈출을 시도하였지만 다시 붙잡혔다. 재차 나무막대기를 들고 힘을 다해 저항하였지만, 결국 일제 순사의 총격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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