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致萬
陳致萬1876. 7. 25 ~ 1925. 8.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독립의군부
- · 흠치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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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4) 1876년 7월 25일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 입암면(笠岩面) 천원리(川原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양(驪陽)이고,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진치만(陳治萬)을 썼다. 1913년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임병찬(林炳瓚)이 조직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에 가입한 후 활동하였다. 독립의군부는 1912년 9월 일제의 강제합병에 저항하기 위해 고종의 명을 받은 전라남도 순무대장 임병찬이 비밀리에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합병하자 전국에서 이를 반대하고 저항하기 위한 비밀결사가 조직되고 의병을 모의하거나 지원하는 활동이 펼쳐졌다. 그러자 고종은 이들을 규합하고 의병 창의를 지원하고자 임병찬에게 직접 유명서(諭命書)를 내려 황제의 뜻과 의지를 전하였다. 1913년 독립의군부에 가입하고 고종의 유명서를 필사·제작한 후, 정읍 일대에서 동지를 규합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4년 임병찬이 일제 경찰에 붙잡혀 거문도(巨門島)로 유배되어 단식 끝에 사망하였다. 이용규(李容珪)는 1916년 7월 임병찬의 뜻을 이어받아 국권회복운동을 재개하였다. 이용규·윤병일(尹炳日)·이만직(李晩稙)·이래수(李來修)·김태영(金泰泳)·전용규(田鎔圭)·손진형(孫晉衡) 등과 함께 비밀결사이자 종교단체인 청림교(靑林敎)의 일파인 흠치교의 포교활동을 가장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1917년 5월 홍성경찰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어서 그해 7월 7일 평안북도 신미도(身彌島)로 유배되어 1년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신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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