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弼昊
韓弼昊1886. 7. 16 ~ 1911.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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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1) 1886년 7월 16일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산천면(山川面) 용동리(龍東里)에서 태어났다. 1907년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가 결성되자 황해도지회에서 활동하였다. 1906년 황해도 안악(安岳)에서 김홍량(金鴻亮)·최용권(崔龍權)·김효영(金孝英) 등과 함께 양산학교(楊山學校)를 설립하여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양산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07년 4월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조직된 비밀결사 신민회에 가입한 뒤 황해도지회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안악의 양산중학교와 안악군 면학회(勉學會)의 사범강습소(師範講習所)에서 교편을 잡고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12월 일제가 조작한 ‘안악사건’에 연루되어, 다음해 1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안악사건’은 안명근(安明根) 등이 신천(信川)에서 무관학교의 설립 자금을 모집하다가 민병찬의 밀고로 체포된 사건을 말한다. 이때 일제는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암살하고자 군자금을 모집한 것이라고 날조하여 관련 인사 160여 명을 검거하였다. 일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존재를 알아냈고, 1911년 9월 윤치호(尹致昊)를 시작으로 양기탁(梁起鐸)·안태국(安泰國)·이승훈(李昇薰)·유동열(柳東說) 등 600여 명을 검거·투옥하였다. 결국 1911년 안악사건으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잔혹한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끝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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